그 여름의 끝- 이성복 그 여름의 끝 이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 시 2018.08.29
눈물의 중력- 신철규 눈물의 중력 신철규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 시 2018.08.13
장석주 시인, 훌륭한 시인은 잉크를 찍어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침묵으로 시를 쓴다. 모든 시는 침묵이라는 목표를 지향한다. 좋은 시집에는 말과 말 사이, 혹은 말 너머로 침묵과 고요의 공간이 광막하게 펼쳐진다. 숲길 2018.07.19
고요- 오규원 고요 오규원 라일락 나무 밑에는 라일락 나무의 고요가 있다 바람이 나무 밑에서 그림자를 흔들어도 고요는 고요하다 비비추 밑에는 비비추의 고요가 쌓여 있고 때죽나무 밑에는 개미들이 줄을 지어 때죽나무의 고요를 밟으며 가고 있다 창 앞의 장미 한 송이는 위의 고요에서 아래의 고.. 시 2018.07.06
장석주, 나를 살리는 글쓰기 문장에 형용사와 부사가 많은 것은 곧 당신 정신의 무름을 반영한 결과다. 문장이 쓸데없는 감정으로 넘쳐나고 사실의 핵심을 전달하지 못한 채 치렁치렁하다는 것은 곧 당신 마음이 흐트러지고 정신이 느슨하다는 징표다. 그걸 부정하지마라. ㅡ장석주 <나를 살리는 글쓰기> 중에서.. 숲길 2018.06.04
밤 벚꽃-이면우 밤 벚꽃 이면우 젊은 남녀 나란히 앉은 저 벤치, 밤 벚꽃 떨어진다 떨어지는 일에 취한 듯 닥치는 대로 때리며 떨어진다 가로등 아래 얼굴 희고 입술 붉은 지금 천 년을 기다려 오소소 소름 돋는 바로 지금 몸을 때리고 마음을 때려, 문득 진저리치며 어깨를 끌어안도록 천 년을 건너온 매.. 시 2018.05.25
빙하기- 박연준 빙하기 박연준 쪼개진 두 손이 접힌 나비가 되어 나 모르게 훨훨 날아갈 것 같다 너는 나를 수십 개로 쪼개 여러 개의 방을 짓고 각각의 방에 흩어지게 했지 절대 하나로 모이게 하지 않았지 첫번째 방에 갇힌 왼쪽 눈이 다섯번째 방에 갇힌 오른쪽 귀를 그리워하기도 했지 나는 쏟아지고 .. 시 2018.05.23
산 그림자와 나비-문태준 산 그림자와 나비 문태준 산으로부터 내려오는 왕성해지는 산 그림자의 내면을 나비가 폴락폴락 날고 있습니다 얇고 하얀 낱장을 넘깁니다 산은 창문 너비의 검은 커튼을 치고 나비는 쪽창 같은 하얀 깨꽃에 날개를 세워 접고 앉고 눈초리에 시린 모색(暮色) 시 2018.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