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오규원 시인 ( 시모음 )

프랑카평화 2017. 6. 30. 23:53

오규원 시인 ( 시모음 )

 

 

         오규원 (오규옥)
출생 : 1941년 12월 29일
사망 : 2007년 2월 2일
출신지 : 경상남도 밀양
학력 : 동아대학교
데뷔 :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경력 : 1982년~2002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수상 : 2003년 제3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문학부문
1982년 현대문학상 수상
대표작 : 사랑의 기교,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 하늘아래의 생
팬카페 : 시인 오규원을 사랑하는 모임

 

 

 

사랑의 감옥

뱃속의 아이야 너를 뱃속에 넣고
난장의 리어카에 붙어서서 엄마는
털옷을 고르고 있단다 털옷도 사랑만큼
다르단다 바깥 세상은 곧 겨울이란다
엄마는 털옷을 하나씩 골라
손으로 뺨으로 문질러보면서 그것 하나로
추운 세상 안으로 따뜻하게
세상 하나 감추려 한단다 뱃속의 아이야
아직도 엄마는 옷을 골라잡지 못하고
얼굴에는 땀이 배어나오고 있단다 털옷으로
어찌 이 추운 세상을 다 막고
가릴 수 있겠느냐 있다고 엄마가
믿겠느냐 그러나 엄마는
털옷 안의 털옷 안의 집으로
오 그래 그 구멍 숭숭한 사랑의 감옥으로
너를 데리고 가려 한단다 그렇게 한동안
견뎌야 하는 곳에 엄마가 산단다
언젠가는 털옷조차 벗어야 한다는 사실을
뱃속의 아이야 너도 태어나서 알게 되고
이 세상의 부드러운 바람이나 햇볕 하나로 너도
울며 세상의 것을 사랑하게 되리라 되리라만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

죽음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걷기가 귀찮아서 택시를 탔다

나는 할 일이 많아
죽음은 쉽게
택시를 탄 이유를 찾았다

죽음은 일을 하다가 일보다
우선 한잔 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기 전에 우선 한잔하고
한잔하다가 취하면
내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죽음은 쉽게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이유를 찾았다

술을 한잔 하다가 죽음은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것도
귀찮아서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생각도
그만두기로 했다

술이 약간 된 죽음은
집에 와서 TV를 켜놓고
내일은 주말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강이 제일이지-
죽음은 자기 말에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그래, 신문에도 그렇게 났었지
하고 중얼거렸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 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꽃과 그림자

붓꽃이 무리지어 번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있어
왼쪽과 오른쪽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왼쪽에 핀 둘은
서로 붙들고 보랏빛입니다
그러나 가운데 무더기로 핀 아홉은
서로 엉켜 보랏빛입니다
그러나 오른쪽에 핀 하나와 다른 하나는
서로 거리를 두고 보랏빛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붓꽃들이 그림자를
바위에 붙입니다
그러나 그림자는 바위에 붙지 않고
바람에 붙습니다

 

 

 


빈자리가 필요하다

빈자리도 빈자리가 드나들
빈자리가 필요하다
질서도 문화도
질서와 문화가 드나들 질서와 문화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지식도 지식이 드나들 지식의
빈자리가 필요하고
나도 내가 드나들 나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친구들이여
내가 드나들 자리가 없으면
나의 어리석음이라도 드나들
빈자리가 어디 한구석 필요하다

 

 


편지지와 편지봉투

당신의 편지를 오후에 받았습니다
그래도 햇빛은 뜰에 담기고 많이 남아
밖으로 넘쳤습니다
내 손에서는 사각사각 소리가 났습니다
당신의 편지는 사각봉투였습니다
사각봉투 끝은 오후의 배경을 가리켰습니다
당신의 편지는 A4용지였습니다
A4용지는 단정하고 깍듯했습니다
A4용지는 나의 그늘은 잘 담기었지만
바람은 담기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두 겹으로 하얗게 접혀 있었습니다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

씨앗은 씨방에
넣어 보관하고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있는 바람은
잔디 위에 내려놓고

밤에 볼 꿈은
새벽 2시쯤에 놓아두고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기는 일이다

가을은 가을텃밭에
묻어 놓고

구름은 말려서
하늘 높이 올려놓고

몇송이 코스모스를
길가에 계속 피게 해놓고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

다가오는 겨울이
섭섭하지 않도록

하루 한 걸음씩 하루 한 걸음씩
마중가는 일이다

 



한 잎의 여자 1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한 잎의 여자 2

나는 사랑했네 한 여자를 사랑했네
난장에서 삼천원 주고 바지를 사입는
여자, 남대문 시장에서 자주 스웨트를 사는
여자, 보세가게를 찾아가 블라우스를 이천 원에 사는
여자, 단이 트진 블라우스를 들고 속았다고 웃는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네, 순대가 가끔 먹고 싶다는
여자, 라면이 먹고 싶다는
여자, 꿀빵이 먹고 싶다는
여자, 한 달에 한 두 번은 극장에 가고 싶다는
여자, 손발이 찬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네, 그리고 영혼에도 가끔 브레지어를 하는
여자.

가을에는 스웨트를 자주 걸치는
여자, 추운 날엔 팬티스타킹을 신는
여자, 화가나면 머리칼을 뎅강 자르는
여자, 팬티만은 백화점에서 사고 싶다는
여자, 쇼핑을 하면 그냥 행복하다는
여자, 실크스카프가 좋다는
여자, 영화를 보면 자주 우는
여자, 아이 하나는 꼭 낳고 싶다는
여자, 더러 멍청해지는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네,
그러나 가끔은 한 잎 나뭇잎처럼 위험
한 가지끝에 서서 햇볕을 받는 여자.

 

 

 


한 잎의 여자 3 


내 사랑하는 여자,지금 창 밖에서 태양에 반짝이고 있네.

 나는 커피를 마시며 그녀를 보네.

커피같은 여자,그레뉼같은 여자,

 모카골드 같은 여 자,

창 밖의 모든 것은 반짝이며 뒤집히네,

뒤집히며 변하네,

그녀도 뒤집 히며 엉덩이가 짝짝이되네.

오른쪽 엉덩이가 큰 여자,

내일이면 왼쪽 엉덩이가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여자,

봉투같은 여자.그녀를 나는 사랑했네.
자주 책 속 그녀가 꽂아놓은 한잎 클로버 같은 여자,

잎이 세 개이기도 하고 네 개이기도 한 여자.

내 사랑하는 여자, 지금 창 밖에 있네.

햇빛에는 반짝이는 여자, 비에 는 젖거나 우산을 펴는 여자,

바람에는 눕는 여자, 누우면 돌처럼 깜감 한 여자,

창 밖의 모두는 태양 밑에서서 있거나 앉아 있네.

그녀도 앉아 있네.앉을 때는 두 다리를 하나처럼 붙이는 여자,

가랑이 사이로는 다른 우주와 우주의 별을 잘보여 주지 않는 여자,

앉으면 앉은,서먼 선 여자,
밖에 있으면 밖인, 안에 있으면 안인 여자,

그녀를 나는 사랑 했네.

물푸 레 나무 한잎처럼 쬐그만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사랑의 대낮

솟구치는 질경이는 잎 뒤의 햇볕을
어디에다 두었나 잎 뒤가 텅 비었다
송장풀과 개비름은 잎 뒤의 그림자를
어디에다 숨겨두었나 그림자가 없는
육체라니! 숨긴 그림자 속에 무엇을
숨겨두었나 허물어진 아파트 단지
외곽의 땅이 개쑥갓과 쑥부쟁이처럼
부풀고 있다 드러누워 기고 있는
외풀은 다리를 어디에다 숨겨두었나
(그곳에 나는 오늘 가보고 싶다)
野古草와 바랭이는 허리를 어디에다
숨겨두었나 어디에다






봄과 밤

어젯밤 어둠이 울타리 밑에
제비꽃 하나 더 만들어
매달아 놓았네
제비꽃 밑에 제비꽃의 그늘도
하나 붙여 놓았네

 

 

 



눈송이와 전화

한 죽음을 불쑥 전화로 내게 안기네
창 밖에 띄엄띄엄 보이는 눈송이를 따라 내리다가
내리다가 돌에 얹혔다가 허물어졌다가 마른 풀에 얹혔다가
나무 가지에 얹혔다가 흙에 얹혔다가 스며들다가
무끄러미 아직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한 내 손을 보네

 

 

 



겨울 나그네 

지난 겨울도 나의 발은
발가락 사이 그 차가운 겨울을
딛고 있었다.
아무데서나
심장을 놓고
기우뚱, 기우뚱 소멸을
딛고 있었다.

그 곁에서
계절은 귀로를 덮고 있었다.
모음을 분분히 싸고도는
인식의 나무들이
그냥
서서 하루를 이고 있었다

지난 겨울도 이번 겨울과
동일했다.
겨울을 밟고 선 애 곁에서
동일했다.

마음할 수 없는 사랑이여, 사랑......
내외들의 사랑을 울고 있는 비둘기
따스한 날을 쪼고 있는 곁에서
동일했다.
모든 나는 왜 이유를 모를까.
어디서나 기우뚱, 기우뚱하며
나는 획득을 딛고
발은 소멸을 딛고 있었다.

끝없는 축복.
떨어진 것은 根대로 다 떨어지고
그 밑에서 무게를 받는 日月이여
모두 떨어져 덤숙히 쌓인 위에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발자국이 하나씩 남는다.

손은 필요를 저으며 떨어져나가고.
손은 필요를 저으며 떨어져나가고.

서서 작별을 지지하는 발
발가락 사이 이 차가운 겨울을
부수며
무엇인가 아낌없이 주어버리며
오늘도 딛고 있다.

바람을 흔들며 선 고목 밑
죽은 언어들이 히죽히죽 하얗게 웃고있는
겨울을.
첨탑에서 안식일을 우는 종이
얼어서 얼어서 들려오는
겨울을.

이번 겨울에도 나의 발은
기우뚱, 기우뚱 소멸을 딛고
日月이 부서지는 소리
그 밑 누군가가 무게를 받들고......

 

 

 

 

 

 

빈약한 상상력 속에서

1
어제 나는 술을 마셨고
마신 뒤에는 취해서 유행가
몇 가닥을 뽑았고, 어제
나는 술을 마셨고 그래서
세상이 형편없어 보였고, 또
세상이 형편없었으므로 안심하고
네 다리를 쭉 뻗고 잤다.

어제 나는 다른 때와 다름없는 정오에 출근했고
출근하면서 버스를 타고 옆에 앉은
여자의 얼굴을 한 번 훔쳐 보았고,
이 여자 또한 다른 여자와 마찬가지로
한 남자의 사랑을 받으리라는 점을
한 남자의 사랑을 받으면
이 여자의 눈에도 별이 뜨리라는 점을 확신했다.

나는 어제 버스가 쉽게 달리는 것을 느꼈고
쉽게 달리는 버스 때문에 이 시대의 우리들이 얼마나 무능
한가를 느꼈고,
쉽게 달리는 버스 속에서 보아도
거리에 선 우리들의 상상력은 빈약해 보였고
그 옆에 선 아이들조차
다시 태어나리라는 상상력을 방해했고,
나는 다시 태어나기 위해
버스가 고장이 나기를 희망했다.
버스가 탈선되기를, 탈선의 장치의
거리가 준비되기를,
허락받은 사람들은 허락받은 냄새와 지랄의 아름다움을 위

셋방이라도 하나 얻기를 희망했다.

이 모든 것을 사랑의 이름으로 나는 갈구했고, 그리고
사랑의 말에는 모두 구린내가 나기를 희망했다.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랑이란
맹물이라는 점을
우리는 너무 완벽하게 잊어버려서
이제는 떠올리기조차 너무나 먼
이제는 그 사실을 떠올리려면
셋방을 얻어 주는 그 방법밖에 더 있겠느냐고
나에게 질문하며.

2
어제 나는 술을 마셨고
술과 함께 오기도 좀, 개뿔도 좀, 흰소리도 좀, 십원짜리
도 좀 마셨고
그러나 오늘 새벽 잠이 깨었을 때는
오기도 개뿔도 다 어디로 가고
후줄근히 젖은 시간이 구겨져 있었다.
구겨진 새벽의 창문과 뜰과
이웃집 지붕 위로
그만그만한 어제의 오늘 하루가 내복바람으로 나를 보았
고,
나는 일어나 있었고,
찬물을 한 사발 마신 후
오늘 하루 그것의 사랑에 박힌
티눈의 정체에게 안부를 나는 물었다.
카세트에 녹음된 금강경의 독경을
한 번 듣고, 뒤집어서
반야경을 한 번 듣고.

오늘 나는 오늘의 어제처럼 출근했고
출근하자마자 커피를 한 잔 마셨고
전화 두 통화 받았고
전화 한 통화를 걸었다.
담배를 피워물고 새삼 어제
집에 무사히 도착한 일을 신기해하며
아직도 서정시가 이 땅에 씌어지는 일을 신기해하며
아직도 사랑의 말에 냄새가 나면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맹물 사랑의 신도들을 신기해하며.

3
내일 나는 출근을 할 것이고
살 것이고
사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므로
내일 나는 사랑할 것이고,
친구가 오면 술을 마시고
주소도 알려 주지 않는 우리의 희망에게
계속 편지를 쓸 것이다.

손님이 오면 차를 마실 것이고
죄 없는 책을 들었다 놓았다 할 것이고
밥을 먹을 것이고
밥을 먹은 일만큼 배부른 일을
궁리할 것이고,
맥주값이 없으면 소주를 마실 것이고
맥주를 먹으면 자주 화장실에 갈 것이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사랑하며 만질 것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게 전화도 몇 통 할 것이고,
전화가 불통이면
편지 쓰는 일을 사랑할 것이다.






그대와 산


그대 몸이 열리면 거기 산이 있어 해가 솟아오르리
라, 계곡의 물이 계곡을 더 깊게 하리라, 밤이 오고
별이 몸을 태워 아침을 맞이하리라






고요

라일락 나무 밑에는 라일락 나무의 고요가 있다
바람이 나무 밑에서 그림자를 흔들어도 고요는 고요하다
비비추 밑에는 비비추의 고요가 쌓여 있고
때죽나무 밑에는 개미들이 줄을 지어
때죽나무의 고요를 밟으며 가고 있다
창 앞의 장미 한송이는 위의 고요에서 아래의
고요로 지고 있다

 

 

 


바다에 닿지는 못하지만 -巡禮8

멸망하지 않는 그대의 꿈일지라도
멸망하지 않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저기, 멸망이라는 말을 모르는 바다.
멸망이라는 언어를
완전히 잊어버린 바다의 슬픔을
해변의 때찔레꽃이 오늘도
울며 대신 떨어진다.

매일
그 뜻을 전하려 바다로 가는 소리.

그대, 돌아오지 마라
누구도 바다에 닿지는 못하지만
바다에 가면
누구나 옷벗은 사람끼리 만나리라.






사랑의 技巧.1

K에게

너를 사랑하기 위하여 나는 너의
집으로 가는 버스에게 당신을 사랑해 하며
아양을 떨고, 너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 버스가 다니는 길과 버스 속의 구린내와
길이 오른쪽으로 굽을 때 너의 허리춤에서
무엇인가를 훔치는 한 사내의 不道德부도덕에게
사랑의 法법을 묻는다.

너를 사랑하기 위하여 오늘은 소주를
마시고
취하는 法을 소주에게 묻는다.
어리석은 방법이지만 그러나
취해야만 法에 통한다는 사실과
취하는 法이 기교라는 사실과
技巧가 法이라는 사실을 나는
미안하게도 술집 여자의 무릎을 베고 누워
취해서 깨닫는다.

내가 사는 法과 내가 사랑하는 法을
낡아빠진 술상에 젓가락으로 두드리며
깨닫는다.
젓가락이 둘이라서
장단이 맞지만, 그렇지만
너를 사랑하는 法은 하나뿐이라 두드려도,
두드려도 장단은 엉망이다.

江 건너 마을에는 後庭花후정화 노랫가락이
높고
밤에도 너의 집으로 가는 버스는
좌석 밑의 구린내와 지린내를 사랑하고
商女상녀는 망국한을 몰라
노랫소리가 갈수록 유창해진다.

나는 이곳의 技巧派기교파로 울면서, 이 울음으로
몇 푼의 동냥이라도 얻어
너의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하여
여기 이렇게 울면서 젓가락을 두드리며.

 

 



부처

남산의 한중턱에 돌부처가 서 있다
나무들은 모두 부처와 거리를 두고 서 있고
햇빛은 거리 없이 부처의 몸에 붙어 있다
코는 누가 떼어갔어도 코 대신 빛을 담고
빛이 담기지 않는 자리에는 빛 대신 그늘을 담고
언제나 웃고 있다
곁에는 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고
지나가던 새 한 마리 부처의 머리에 와 앉는다
깃을 다듬으며 쉬다가 돌아앉아
부처의 한쪽 눈에 똥을 뉘놓고 간다
새는 사라지고 부처는
웃는 눈에 붙은 똥을 말리고 있다

 



마음이 가난한 者

성경에 가라시대 마음이 가난한 者에게 福이 있다 하였으니

2백억 축재한 사람보다 1백9십9억 원을 축재한 사람은 마음이 가난 하였으므로
天國은 그의 것이요

1백9십9억 원 축재한 사람보다 1백9십8억을 축재한 사람 또한 그민큼 더 마음이 가난하였으므로
天國은 그의 것이요

그보다 훨씬적은 20억 원이니 30억 원이니 하는 규모로 축재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마음이 가난하였으므로
天國은 얻어놓은 堂上이라

돈 이야기로 詩라고 써놓고 있는 나는 어느 시대의 누구보다도 궁상맞은 시인이므로
天國은 얻어놓은 堂上이라.

 





비가 온다,

대문은 바깥에서부터 젖고 울타리는 위에서부터 젖고 벽은 아래서부터 젖는다
비가 온다,

나무는 잎이 먼저 젖고 새는 발이 먼저 젖고 빗줄기가 가득해도 허공은 젖지 않 는다

..................라고 말하는 시도 젖지 않는다

 

 

 

 

출처 : 백합 정원
글쓴이 : lil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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